(금정산 2016.8)


모처럼


모처럼 비가 내린다. 올여름은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었다. 그렇게 핏대 빡빡세우고 고개 뻣뻣하게 치겨 들던 여름이란 넘이 이제는 얌전하다.

신나게 기세를 올리던 여름이란 넘이라 더더욱 그렇다. 이 모두가 돌고도는 우주의 작은 유영이다. 우리는 당연한 일들이라고 받아 들이는 것에 익숙하다.

소소한 생활의 어귀어귀마다 너무 당연하다고 믿는다. 이번에 맛좀 봐라는 식으로 더위는 계속해서 뜨거운 열 풀무질을 우리에게 하였다.


사람이 어찌 자연을 이길 수 있으랴? 사람이 이길 수 있는 곳은 사실 어디에도 없다. 다른 사람을 이길 수도 없다. 마누라를 이길 수 있나. 자식을

이길 수 있나. 상사를 이길 수 있나. 그렇다고 아래 사람을 이길 수 있나. 대부분 자기자신에게도 진다. 밭 이랑에 어설프게 심어 놓은 고추며 호박, 가지

고구마, 깻잎이 여름더위에 헉헉거릴 무렵 마술처럼 열매을 맺는다. 고추도 호박도 가지도 고구마도 깻잎도 예술이 따로 없다.


이넘들이 더위를 이기는 강자다. 사람들이야 더위를 피해서 달아나기 바쁘다. 계곡을 찾고, 바다를 찾고, 얼음을 찾고, 에어콘을 찾아 달아난다.

비겁한 사람들이다. 올림픽에서 상대에게 눈 부릅뜨고 한판 붙어야 할 사람이 등을 보이고 달아나는 격이다. 그래도 하늘이 보우하사 빗님이 내린다.

아우성치는 사람들에게 한 수 가려켜 준다. 대신 올 가을에 부지런히 농사일이나 하라고!


해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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