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때 통신표 일부)
50년전 이야기
책장 정리를 하는데 책 갈피에서 무언가 툭 떨어집니다. 주워보니 초등학교 통신표네요. 우리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국민학교라 불렀읍죠.
통신표는 요즘의 성적표입니다. 지금부터 50년 전의 기록입니다. 키 118㎝, 몸무게 23㎏입니다. 지금의 아이들 키와 몸무게가 궁금하였습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초등학교 4학년 평균치 알아보니 키 139㎝, 몸무게 31㎏입니다. 예전의 학생들과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왜소합니다. 그래도
저 체구로 험한 산에 가서 나무 하루에 두짐씩 해오고, 들에 나가서 망태에 꼴 베다가 소 먹이고 집안일 거들었던 어린시절 입니다.
지금의 아이들과 그때의 아이들 50년의 시차를 두고 하늘과 땅 차입니다. 우선 학교가 먼거리에 있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갑니다.
키로수가 왕복 5키로는 족히 넘는 거리입니다. 지금 아이들은 모두가 스쿨버스나 부모님 자가용 승용차로 다닙니다. 집이 가까워서 걸어다녀도
그리 먼 거리는 아닙니다. 도로도 비포장 도로라 차라도 한대 지나갈적이면 코를 막고 차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숨은 쉬지 않은채 참습니다.
먼지투성이기 때문입니다. 책가방 엄두도 못내죠. 책을 둘둘 말아 보자기에 싸서 남학생은 어깨 대각선으로 여학생은 허리춤에 단단히
묶고 다닙니다. 달려 가기라도 하면 책과 함께 싼 도시락통이 어찌나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내던지 챙피하기도 했었죠.
도시락 이야기 좀 더 하지요. 겨울입니다.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보아도 산 밖에 없는 곳. 기백산, 금원산, 덕유산, 호음산 아래 눈이 어찌나 많이
오던지 눈이 거의 허리에 차입니다. 학교 갈때는 난로용 땔감으로 장작 하나씩 가져 가야 합니다. 일종의 자급자족입니다. 좀 잘 사는 집 아이들은
나무 대신 돈으로 내기도 하였습니다. 점심때는 진풍경이 벌어지죠. 난로 연통 주위로 양은 도시락을 세로로 쭈욱 올립니다.
도시락이 노릇노릇 굽히는거죠 ㅎ 도시락 반찬은 멸치에 무우김치 여기다 계란 후라이라도 있으면 최상급으로 쳤죠. 도시락은 고학년때
이야기이고 저학년때 그때는 급식을 받아 먹었습니다. 급식은 빈도시락을 들고 줄을 서면 노랑색 옥수수죽을 배급 받아 먹었었죠. 죽이 나오다가
나중에는 옥수수빵이 나왔답니다. 노랑색 옥수수빵을 칼로 두부 자르듯 잘라서 주죠. 뜨끈뜨끈한 옥수수빵 급식 지금도 생각납니다.
운동회날이 오면 만국기가 펄럭이고 확성기에 음악소리도 쿵쿵 울립니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저켠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동네 사람들과
앉아서 우리들 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간식으로 삶은 밤과 고구마, 계란, 김밥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지요. 오원짜리 사이다도 있었습니다.
국민학교 올라가는 등교길에는 온통 장사하는 아주머니 아저씨들로 가득했구요.
옷은 설이나 추석 명절이 되어야 어쩌다 한벌 얻어 걸칩니다.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는 형이나 누나 옷을 물려 입기도 예사였습니다.
신발은 태화고무 진짜표 검정고무신에 학교 갔다오면 집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들 들에 일하러 가셨기 때문이지요. 병원 병원은
시골 면소재지에 공의라고 딱 한군데 있었어요. 공의는 일종의 공공의료인으로 나이가 많이 드신 은퇴 의사가 시골에 와서
진료를 봐 주었는데 시설도 약품도 열악하기 그지 없습니다. 병원에는 왠만하면 참고 가지 않았읍죠. 돈도 없고 가봐야 밥 잘묵고
풀떡풀떡 뛰어 다니면 낫는다고 하지요. 맞습니다. 밥 잘 먹고 풀떡풀떡 뛰어 나니면 최고죠 ㅎㅎㅎ. 이빨 썩은거는 아무리 뛰어다녀도
안되는데 통신표에 썩은이가 네개나 있었으니 참 용감한 생각입니다ㅋ
먹거리는 또 어땠을까요? 이때쯤 라면이라는 명품이 등장하였습니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하던 시절에 라면은 신기하고 가히 선풍적인
인기 식품이 되었지요. 첫째 간편했어요. 라면올도 꼬불꼬불한게 특이했지요. 끓여 놓으면 기름이 동동 뜨고 맛 또한 일품이라 국물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먹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저녁을 먹습니다.
각자 집에서 가져온 쌀 반되씩 들고서 모입니다. 들고온 쌀은 모아서 저 윗동네 꼬딱지만한 구멍가게에 가서 라면과 국수와 바꾸어 옵니다.
라면만 사기에는 비싸고 국수와 섞어 끓인다는 생각에서지요. 삼양 왈순마 라면 맛 있습니다. 놀이는 말뚝박기, 자치기, 야구 등 다양했습죠.
말뚝박기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양지바른 담벼락에 한사람이 등을 대고 서고 다른 사람 두어명이 엎드려 배에 머리를 박지요.
그 위로 뒤에서 달려 옵니다. 한사람 두사람 세사람 네사람 무게에 못이겨 말이 넘어지면 다시합니다. 이때 선사람과 맨 앞에 달려온
사람이 가위 바위 보를 하는 식입니다. 자치기는 나무 막대기로 작은 나무를 쳐서 멀리 보냅니다. 멀리 간 거리를 100자 200자 재어서
승부를 가름니다. 딱지도 많이 쳤습니다. 구슬치기도 있었죠. 여학생은 고무줄 놀이, 소꿉놀이, 공기돌놀이 다양합니다.
50년전 이야기입니다!
해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