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유산 2013.1)

잠자는 모계사회

 

여보시오! 우리 통성명이나 합시다. 아 그래요 저는 전주 이가올시다. 그러세요 저는 밀양 박가입니다. 길가던 나그네 두 사람이 고갯길 산마루턱 소나무 아래

나누는 이야기다. 우리는 성씨따라 우리의 정체성을 무의식중에 만들며 살아간다. 기록이야 어찌되었건 성씨로 가(家)를 이룬다. 그러면 그대의 어미는

무엇인가? 족보를 보니 어미의 이름은 없고 순흥 안씨. 나주 임씨, 청주 한씨 등등이다.

 

전통적인 남존여비 사상이다. 성씨는 오롯이 아버지 성만을 말함이니 어머니 성은 한대만 내려가도 없어진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같은 성씨지만 어머니는 다른

성씨를 가졌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또 다른 성씨다. 위로 가면 갈수록 이리저리 얽히고 섥힌다. 현대사회처럼 여성의 역할이 동등한 세상에서 보면 불공평해도

한참 불공평한 이야기다. 바로 잠자는 모계사회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어머니 성씨 찾기 운동을 하자고 함도 아니다. 그래봐야 동의를 받기는 커녕 혼란만 가중시킨다고 퉁이나 맞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고는 있어야 한다. 우리가 김씨, 이씨, 박씨라고 해도 사실은 모두다 같은 그릇에 비벼 놓은 비빔밥처럼 섞여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아버지 성씨를 따르지

않고 어머니 성씨를 따랐다면 그대의 성씨는 무엇인고?

 

우리 할머님이 진양강씨니까 우리 아버지는 진양강씨일테고 우리 어머니는 순흥안씨가 아니라 우리 외할머님 성씨가 경주김씨니까 경주김씨일테고 그러니

진양강씨 아버지와 경주김씨 어머니 사이에 태어 났으니 나는 경주김씨인가? 이처럼 모계 혈통으로 샘하면 영 엉뚱한 성씨로 나온다. 우리의 성씨라는 것이

산에서 자라나는 소나무와 같다. 김씨 소나무, 이씨 소나무, 박씨 소나무가 아니라 그냥 소나무다.

 

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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