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 두륜산 유선관)
맛은 있네
섭씨 38도!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고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기온이다. 퇴근이다.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길이다. "날도 더운데 오늘 저녁은 간단 메뉴로
밖에서 먹읍시다" 더운 날씨에 저녁 준비하는 집사람에 대한 배려다. "그랍시다. 머 묵으로 갈까요. 짜장면이나" "짜장면은 지난번에도 묵었는데 골프장 쪽으로
가보면 어떻겠노" "좋습니다. 아파트 앞에 시간 맞추어 나가 있겠어요" 한 시간을 달려 집앞이다.
언제나 처럼 맵시 없이 수더분하게 입고 나온 집사람이다. "어서 오이소 가 보입시다" 골프장 입구라 그럴싸한 음식점이 더러 있는 곳이다. 청국장집이다. 차량이
딸랑 한 대 있다. 왠지 가기가 싫다. 아구찜집이다. 여름 휴가 갔는지 문을 닫았다. 추어탕집 문을 열어 놓았고 차량도 많이 있다. 오라 여기가 맛집이구먼 식당에
는 부인네들만 참새때처럼 재잘재잘 밥 먹느라 정신이 없다. 쩌업 머 하는 사람들인고. 집도 없고 가족도 없는 사람들인가? 남타령 할 때가 아니다.
밥이나 묵어야지. "여기 추어탕 두개 주이소" 조금 있다가 주인장이 준비된 추어탕을 들이민다. 밑 반찬도 그렇고 추어탕도 며칠전에 친구네 부부와 먹은 추어탕
과는 딴판이다. 성의가 없고 별로다. 추어탕에 밥 한 공기를 말아서 먹는다. 우리 집사람 추어탕 한 숟가락 떠더니 "맛은 있네" 한다. 맛은 있네. 그냥 맛 있으면
맛있네 하면 될일이지 "맛은 있네" 작은 다툼이 시작된다. "맛은 있네가 머꼬 그냥 맛 있네 하면 되지"
맛은 있네 하면 맛은 있지만 다른 무언가가 별로라는 의미 아닌가?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가 서로의 밥 맛을 싹 가시게 한다. 그래도 추어탕 한 그릇을 다 비운다.
집사람은 속이 상하는지 팅팅거리며 추어탕 먹기를 거부한다. 사실은 음식점에서 "맛은 있네" 한적이 여러번이다. 맛 있네, 맛도 있네, 맛만 있네. 맛은 있네.....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괜찮은 음식점을 일컬어 맛집이라고 한다..... 맛은 있는집?
해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