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가 다 가고 나면 아마도 변할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계기로 변하지요. 제행무상이라 온갖 삼라만상이 알게 모르게 변하는 것입니
다. 얼굴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고, 열정도 변하고, 보는 시각도 변하고, 구름이 이리저리 변하듯 우리내 인생도 변해 갑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생각납니다. 가끔 생활 하면서 여러 법칙이 그냥 이론이 아니고 실지로 일어나는 일들을 목격합니다. 사람은 예지력이 있는
만물의 영장이지요 ! 변하되 어떻게 변하여야 하는가. 변하는 것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는 것과 더 나쁜 방향으로 변하는 것이 그것이죠. 이왕이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여야 좋은데 그렇게 되도록 어찌 하면 될른지 하안거 하면서 그 답을 찾아 봄도 심심하던 차에 오히려 잘된 일일른지 모르겠어요.
생각이 나서 그냥 손가락 움직이는데로 써 보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히여 생각해보고, 인생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
나는 얼마나 이 한해를 살아 가면서 남들한테 진정으로 정성으로 진실로 편견 없이 편안하게 대하였는지 반성하여 봅니다. 언제 때가 되면, 언제 그날이 오면, 언제 기다림
이 지쳐지면 못다한 이야기를 별빛처럼 쏟아내고 막걸리 한 사발 기울이면서 여보게 친구 여보게 아우 ........등어리 토닥이며 투박한 손 잡고 입가에 자욱 남기며......코끝
이 시리도록 한잔 하고 싶은 마음이 이 여름밤 나오는 것은 어찌 할 수 없는 긴 목을 가진 사슴의 슬픈 원초적인 본능인지, 이웃을 사랑하라고 법당에서 교회 마루바닥에서
성당에서, 깊고 깊은 산골 누옥에서, 내가 언제인가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처럼.... 고뇌의 깊은 새벽을 기쁨으로 찬란한 유치함으로 승화시키고자 합니다.
사람의 심리를 그 상태를 보았다는 그래서 관심법으로 사람을 쥐락펴락 하였던 궁예가 그러 하였을까? 남의 마음상태를 알아 보는 관심법을 가진 궁예는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 삶을 살았을까요. 그래서 그는 미륵의 세계를 들어 가지 못하고 차디찬 바위위에서 쓸쓸하게 비운의 최후를 맞이 한 걸까? 자꾸만 생각이 깊어 집니다. 기대하지 않았
던 것을 얻었을 때 사람들은 더욱 기뻐 합니다.
희열은 또 다른 감동의 드라마를 창출하는 의미 있는 소금 역할을 하곤 합니다. 지구의 수레바퀴는 돌아 갑니다. 불가의 윤회사상처럼 돌아가는 게지요. 돌아가는 것은 끝
이 없습니다. 끝이 없다는 것은 곧 끝이 있다는 것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심성이 좋은 사람 그를 우리는 현인이라 부릅니다. 당신은 현인 입니까? 아니면 그냥 아무생각 없이 하루를 맞이하는 나그네 입니까?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넘아 공부하여라. 이넘아 곰부하여라. 무릎아래 있을때부터 아이들에게 다그친 엄마는 어느날 소원을 풀었습니다. 그리도 열망하던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휴우
이제는 걱정이 없겠지 그러나 얼토당토 않은 착각이었지요. 서울대학교만 들어 가면 모든것이 다 될 줄 알았는대 아니었거든요 . 그때 엄마 나이는 마흔의 후반을 접어 들
었습니다. 갑자기 지나온 날들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차라리 이럴바에는 친구들과 나이트도 가보고, 놀기도 하여 보고, 어디 여행도 다녀 볼걸 끝없는 삶의 이야기 들은 인
연의 끈이라는 가면으로 어머니를 몰아 붙였지요...
경배는 서울대 출신이다. 언제나 가슴속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경배는 60년생이다. 그러니 우리 나이로 설을 쉬면 쉰여덟이다. 자란곳이 외딴 섬이라 늘 향수에 젖어
있곤 한다. 경배의 어릴적 이야기로 돌아 간다. 경배 아버지는 목포에 있는 어판장에서 일하시며 경배 뒷바라지를 하였다. "리어카아~리어카아~길 비켜요오~~"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을 외치며 행인들 틈새로 키높이 보다 많은 고등어며 갈치며 닥치는데로 실어다가 형제상회를 비롯하여 오거리 뒷게 생선가계까지 하루에도 리러카를 어깨
죽찌가 까지고 피가나서 꼬꾸라질 정도까지 막일을 하신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는 고민이 있었다. 바로 자리세이다. 원 법에도 없는 리어카 운반하는 힘없는 늙은이가 자리세라고 이 넘의 시장바닥에도 조폭 쫄무래기들이 설치고 다
녀서 목 좋은 길목에다 간이 천막을 쳐 놓고는 이곳을 편안하게 지나려면 자리세든 통과세든 니 맘대로 생각하고 한번에 천원씩을 받는 것이다. " 우라질 넘들 해도 해도
너무 하는거 아녀?" 경배 아버지는 속으로만 중얼 거릴뿐 다리목을 지날적이면 아예 얼른 천원짜리 자리세는 물론이고 되도 않게 고맙다고 연방 굽신굽신 인사까정 하면서
지난다.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운 이상한 세상 그래야 편안하니 어쩌랴 약자에게는 그것도 그들만의 살아가는 지헤라며 지혜라고
경배는 어린 나이지만 아버지를 보면 피해 다녔다. 아버지의 일하는 모습이 왠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경배는 유달국민학교를 다닌다. 오늘도 경배 아버지는 리어카에 생
선을 싣는다....."아요오~~김씨~~여기 고등어 스무상자하고 저어기 빈박수 열다섯개 용당동 섬마을상회 ....알지라아아"....늘상 다니는 길이라 김씨는 눈감고 도 갈 수 있
는 길이다....김씨는 말수가 없는 사람이다. 잘 웃지도 않는다. 찍해야 막걸리 두어잔이 들어 가면 다 떨어진 안주머니에서 하얀 담배개비를 질겅질겅 씹듯이 물고는 긴 한
숨에 가까운 하얀 연기를 토해 낸다. 그리고는 이내 먼 하늘만 바라본다. 하기는 마누라 없이 홀애비로 살아 온지도 어언 칠팔년이 다 되어 간다.
이넘이 쥐어 박으면 쥐어 박는대로 저넘이 부르면 부르는대로 파도에 물결치는대로 살아가는 경배아버지는 삼남매가 있다.사람을 키우는 건지 어디 거지를 키우는지 모를
정도로 낡은 헛간 반지하 단칸방이 그들이 눈 부비며 피곤한 육신을 누이는 자리다. 경배 아버지는 원래 태생이 완도가 고향이다. 김양식장에서 품팔이 일하던 부모님이
바닷일 나간 이후로 종적을 감추시고 혼자서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여기까지 흘러 들어 왔다. 경배 아버지는 허우대가 멀쩡하고 얼른 보면 키도 훤칠하고 호감이 가는 얼
굴이다. 자세히 바라보면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발견 할 수 있다. 수산물센터에 일나오기 전에 목포역에서 구두닦이 보조로 손님들 구두를 거두어 오고 밥술을
얻어 먹다가 우연히 경배 어머니를 만났다.
경배 어머니는 키가 150정도의 단구에 작은 체격이다. 압해도에서 태어난 경배 어머니는 워낙 소금일 하는 것이 싫었다. 경배 어머니네는 모두가 이곳의 제일 어른인 박노
인네 소금밭에서 일하는 일꾼들이다....소금밭 일은 보기 만큼 환상적이지 못하고 그냥 죽지 못해서 일하는 형국이다. 하루종일 뙤약볕을 씌우고 소금밭에 물 길어 올리고
수차를 발로 저어 올리다 보면 어떨때는 하늘에 해가 두개가 보인다...현기증이 나고 어지러움에 잠시 수차에서 내려와 물이라도 마시려면 박노인 아들넘이 어찌나 행패를
부리든지 발길질은 예사이고 주먹질이니..... 며칠전 목포장날이라 아들넘 없다고 마음 놓고 쉬고 있었다가 건너편 소금밭에서 일하던 미경이가 일러 바치는 바람에 밤새
도록 얻어 맞고 눈이 퉁퉁 부어 올랐다.
미경이는 박노인의 아들넘하고 눈이 맞아 서로 터고 지내는 사이였다. 미경이는 체격이 아주 호리호리하고 이쁜 눈을 가진 섬지방에서 보기드문 이뿐 얼굴을 가진 처자다
일도 야무지게 잘하고, 심성도 좋으나 어쩌다가 박노인 아들넘 경배 친구이기도 한 그 넘을 알고부터는 사람이 많이 달라졌다...박건달이라고 이 동네에서는 부르고들 있
다. 미경이는 박건달 빽만 믿고 걸핏하면 경배어머니를 못 살게 구는 것이다...말로는 언니야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은 실상은 한자락 깔고 바라 보는 것이다. 미경이는 조
숙하여 박건달이 사준 브롯지를 가슴빡에 떡하니 꽂고는 엉댕이 살랑거리면서 걸어 갈라치면 온 섬 머스마들 눈동자가 미경에게로 꽃히곤 한다.
경배 어머니는 야밤에 생전 처음 뭍으로 나왔다. 처음 나온 목포는 신기하였다. 사람들이 많고, 차도 많고, 여기저기 처음 보는 것 천지다. 목포역 한쪽 후미진 곳에 앉아
있다가 그만 허기가 지고 고단하여 깜박 잠이 들었다.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흠칫 깨어 보니 헤멀건 남정내다...경배아버지와 첫 만남이다. 경배아버지는 구두
통뒤에 숨겨 놓았던 빵조각을 가져와 들이 민다...허기진 경배어머니는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반사적으로 받아서 입안에 넣었다 ...살것만 같았다...언제 입에 무었을 넣었
는지 모를 정도이다. 경배아버지는 앳된 경배 어머니를 유달산 밑에 비닐로 남의 집 천막뒤에 읏대어 만들어 놓은 거적대기로 간다...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이다. 집이라기
보다는 그냥 원시인들의 움막이다.
얼굴을 씻을 곳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부엌도 없다. 다만 군용 모포 두어장이 널부러저 있을 뿐이다. 경배어머니는 수줍음이 많은 섬처자다. 그냥 한쪽 켠에 쪼그리고 앉
아 애꿎게 뚫어진 비닐구멍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경배아버지도 통 관심이 없기는 매일반이다. 그동안의 지난한 삶의 흔적이, 삶의 아픔이, 삶의 애환이, 삶의 고통이
이들을 더욱 쾡하게 만들어 놓았다. 최소한의 동물적 욕구도 망각한 채 둘은 그냥 쓰러져 누웠다. 어디선가 종소리가 짤랑 짤랑 들린다 "짤랑~~짤랑~~짤랑~~" 새벽 먼동
이 틀려면 아직 한참 더 있어야 하건만 종소리에 실눈을 뜨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잠에서 깨었다.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해대는 경배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비닐조각 문을 열고는 길을 나선다. 목포역으로 가는 것이다. 목포역 호남선 완행열차가 거대한 쇳덩이가 잠시
쉬어 가는 목포역이다. 그리 바쁜 일도 없고 누가 출석을 부르는 사람도 없지만 이곳으로 오면 경배아버지는 마음이 편안하다. 다른건 몰라도 군용 유류탱크를 반으로 툭
잘라서 장작개비로 불을 지펴 놓아 세상천지 불이라도 쪼이고 있으면 언넘이 무어라 하여도 제일 배짱 편한 곳이다. 지나가는 노파가 길을 묻는다...저 이봐여 삼학도가 어
디로 가야 하남...네에..저어기 길다란
전봇대 지나서 지붕에 거미줄 같이 생긴 집 오른쪽 골목으로 쭈욱 가시시요,,,,노파는 한손에 검정 보자기를 들고 있었다...보자기에는 수탉 한 마리가 눈을 멀뚱멀뚱 하고
있다..불쌍한 달구새끼 같으니라고....허기사 저넘의 닭이나 구두 찍사하는 내나 그기서 그기 아니당가? 역에 있으면 구두 맡기는 손님은 오뉴월 가뭄에 콩 나듯 하고 길 묻
는 나그네요 ...어디 저기까지 무거운 짐이나 들어 달라는 사람, 사람 찾는다는 사람이 고작이다.
밥 먹는 시간도 정하여진 것이 없다. 덩치 큰 주먹코넘이 와서 "어이 묵자" 하믄 그냥 있는대로 먹는것이 밥 먹는 시간이다. 주먹코넘은 이곳의 왕초다. 오래전에 나주에서
온 건달들과 패싸움이 붙어 대판 붙는 통에 한 쪽 다리뼈가 부러져 걸음걸이가 온전치 못하다. 그래도 이 왕초넘을 우습게 보았다가는 그날이 바로 목포를 떠나는 날이거
나, 목포 앞바다에 내리 꽂히는 날이다. 이넘의 장기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품고 있는 고기 집게 갈고리다...이넘은 수가 틀리면 불문 곡직 이넘의 갈고리로 닥치는데로
찍어 버리니 역전 파출소 순경들도 그냥 좋은게 좋다고
이곳에 일종의 치안유지권 비슷한 것을 준다는 암묵적 명분을 내어 걸어 슬슬 구슬려서 이넘의 비위도 맞추고 적당히 설치는 넘들도 조용하게 한다. 완장을 두르고 나서는
제법 어른스러워지고 딴에는 졸개들에게도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씩 뒷뜰에서 개똥철학을 일파하곤 한다.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경배어머니는 시장기에 못이겨 눈을
떳다. 여기가 어딘가 생각하여 보았다. 어제일들이 조금씩 조금씩 기름종이에 기름이 묻어 오르듯 생각이 났다. 밤에 경배 아버지 따라 왔던 길이라 낮이 되니 어디가 어딘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어디 먹을거라도 없나 하고 길을 나오니 사람들이 시끌시끌한 곳이 보인다...자기도 모르게 발길이 사람들 모인곳으로 향한다. 양조장 주인이 그날 아침 청소하고 남
은 술찌거기를 버려 놓은것을 주워 먹는 것이다. 저것이 먹는 것인가? 그냥 목만 쑤욱 빼고 보기만 할 뿐 손이 가지 않는다..올해 경배 어머니는 스물둘이고 경배 아버지는
스물다섯이다. 아침밥을 거르고 배에서 꼬로록 꼬로록 소리가 난다...달리 갈곳도 없고 사람구경만 하고 있는데 어깨를 잡아 당긴다..뒤 돌아 보니 경배 아버지다..경배아
버지가 건내주는 조그만 보자기를 받아 들고 골목길에서 풀어 본다. 안에는 삶은 고구마 몇개가 들어 있다.
목포 5일장날이다. 장날에는 신안 섬사람들의 나들이 날이기도 하다. 왁자지껄 술판도 벌어지고 노점에는 싸구려 부르는 사람, 길가에 할매들의 섬나물행상들이 뒤섞여 있
다. 머리에 옹기를 이고 가는 아낙이 옹기를 내려 놓고는 골목길을 두리번 두리번 거린다. 경배어머니가 바라보니 다름 아닌 압해도 건너 소금밭에서 일하던 미경이다. 아
니 미경이가 여기는 무슨일이란가? 의아해서 바라보니 골목안 섬다방 옆 유달여인숙으로 쑥 들어 간다. 그때 불쑥 박건달이 나타나더니 같이 따라 들어간다. 이런 조것들
봐라 "음 그랬어 그럼 그렇지" 경배어머니는 그런가보다하고 쓴 웃음만 짓는다...둘이 여인숙 들어가는 것이 뭣땀시 들어 가는지 신경 쓸 것도 없고 관심도 없다...소금밭에
서 같이 일하던 집안 식구들 안부가 궁금하였다.
경배어머니는 박건달과 미경이 나올적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한시간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다. 이상하다. 여기서 오늘 자고 가나? 왜 안 나오지 궁금하여 까치발을 하
여 담장 너머 여인숙을 훔쳐 보았지만 아무 기척이 없다. 식구들 안부 묻기를 포기하고 뒤 돌아서서 가는데 저쪽 골목에서 미경이가 입었던 분홍색 저고리고름이 나풀거리
면서 사라진다. 알고 보았더니 들어간 문과 나온 문이 다른줄을 몰랐다...그러다가 경배어머니는 박건달 생각에 얼른 몸을 숨긴다. 저녁이 되어 다시 유달산 자락아래 비닐
움막이다. 이곳 생활 열이튿날이다. 경배아버지는 술이 떡이 되어 들어 왔다. 어디 초상집이 있었는지 돈 많은 부자집 영감 생일잔치가 있었는지 가끔 술냄새가 움막을 진
동시키는 날이 한달에 두어번은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안않고 서로 통성명도 없었고 나이가 몇살인지 어디가 고향인지 이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오늘 잠자리가 달리 없어서 그냥 나부끼는대로
오다보니 여기서 마주친것 뿐이다. 새벽이 되어 목이 마른지 경배아버지는 경배어머니 발을 툭툭 찬다. 물 달라는 신호다. 경배어머니는 머리맡에 놓아 둔 물동이에서 물
한바가지를 떠서 건낸다. 경배아버지는 벌컥벌컥 잘도 마신다...그리고는 뒤 돌아 누워 있는 경배 어머니에게 말을 붙인다. "어이 자는가아" 경배 어머니는 대답 대신 몸을
돌려 바라본다. 경배아버지는 경배어머니에게 검정주머니 하나를 휙 집어 던진다.
주머니를 열어 보니 안에 돈이다. 아니 무슨 돈? 눈이 휘둥그래진 경배어머니가 벌떡 일어났다. "나 낼부터 일 나가는구먼" 무슨 일나가냐고 물어 보기도 전에 경배아버지
가 말을 이어간다. "배 타는구먼" "흑산도 홍어배 타지라이" 세상에나 흑산도 홍어배 엇그저깨도 홍어배 타다가 파도에 휩쓸려 장정 열넷이 그대로 수장 되었다고 온동네가
떠들썩 하였는데...말이 배지 배가 아니라 목선쪼가리 몇개 읏대어 만든 것으로 찌익 찌익 소리가 나기는 예사고 바닥에는 물이 흥건하여 물을 따로 퍼내는 선동이 따로 한
넘을 두고도 배가 기우뚱 기우뚱 곡예춤을 추는 배다...바로 저승길로 가는 홍어배를 탄단다!
경배아버지는 떠났다. 어느날 거짓말같이 훌쩍 경배어머니 혼자 두고 안개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경배아버지가 떠나고 난 움막은 썰렁하였다. 사람의
채취가 얼마나 소중한가? 막상 혼자이고 보니 경배어머니는 천애고아가 된 느낌이다. 스물셋 어린나이의 경배어머니는 비닐 움막을 깨끗하게 청소하였다. 먼지 하나 남겨
두지 않고 정갈하게 치웠다. 모포도 반듯하게 개어 놓고, 물동이 물도 가득 길어다 부어 놓았다. 경배아버지 생각이 났다.무작정 어둠이 깔린 항구로 나가 보았다. 항구에
는 개나리 봇짐을 진 촌부들과 고무다라이에 무언가를 가득 담은 아낙들이 이른 아침 수다를 떨고 있다. 고기잡으러 가는 배가 저 배인가? 흑산도 홍어배는 어디에서 가는
가? 알길이 없다.
심드렁하게 코를 실룩이며 눈을 하늘로 치켜 뜨고는 마음을 고쳐 먹어 본다. 그래! 내가 언제 남의 덕 보고 살았더냐? 죽기 아니면 살기 아니더라고...! 돈 많이 가진넘들 너
거들만 사는 세상이냐 한 푼 없는 내도 어디 한 번 살아 보더라고 항구 주위에는 작은 식당들이 덕지덕지 바닷속 홍합 붙어 있듯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아주머니요오...일
좀 할 수 있을가여라이”“그냥 밥만 먹여 주면 일 잘 하지라이”여기 삐꿈 저기 삐꿈 마른손으로 머리 빗질을 해가면서 식당을 뒤적인다. 식당에는 먼저 일하고 있는 억새 빠
진 바닷가 여인들이 선점하고 있다. “뽈따구 성하고 싶으면 후딱 가소 마 일할곳 엄씅깨”
문전박대도 유만부덕이지 원 사람 홀대는 어따 서러워서 어디 살것소 산 목숨 어디라도 의지하고 입에 풀칠이라도 하자는대 뭔 죄인 취급이랑가? 경배어머니는 탄식하면
서 그냥 구석대기 식당에 무조건 들어 갔다. 주인에게 물어 보는 절차는 생략이다. 이름도 모르는 식당 문 밖에 놓여 있는 채소를 집어 다듬기 시작한다. 다듬다 보니 채소
무더기가 앉은키보다 높게 쌓인다.시장통 옷수선집에 점심 배달을 하고 오던 남포댁이 보고는 경배어머니를 안으로 들인다. “대관절 어디서 온 사람이유...애구...쯔쯔 손
이요 더덕이요 원...”
남포댁은 이북사람이다. 떠돌이 생활하다 어렵게 이곳에서 식당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나 사람이 당차고 일솜씨가 뛰어나고 붙임성이 좋아 항구 사람들에게는
남포댁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남포댁을 따라 경배어머니는 식당일을 한다. 얼마나 몸 사리지 않고 일을 해 대는지 식당 그릇이며 온 구석구석이 반짝반짝 빛난다. 한편
경배아버지는 흑산도 홍어배를 타러 삼학도 항구에 도착이다. 여기저기 모닥불이 켜진다. 어디서 몰려든 사람들인지 낮선 장정들이 시끌벅적 모여 든다 .
“안녕한게라오” 인사를 건낸다. 목포역에서 홍어배 타기로 약조하고 처음 만났던 정씨다. 외팔이 정씨는 말을 더듬으면서 홍어배에 탈 사람들 이름을 불러 댄다. 경배아버
지도 크게 대답을 한다. 배라고는 타 본 적이 없는 경배아버지는 앞에 사람 하는대로 그저 따라 할 뿐이다. 배에 오르자 비릿한 냄새가 엮겨움을 더한다. 홍어배는 칠흑같
이 어두운 밤바다를 나아간다. 목포항 불빛이 점점 희미하여저 간다. 잊고 지냈던 배위라는 것이 실감난다. 여기가 땅 위가 아니라 차디찬 바다 한 가운대라는 것이 이제서
야 정신이 든 것이다. 고깃배는 일본놈들이 버리고 간 폐선 조각을 대충 대충 연결하여 만들어 놓아서 파도가 정면으로 닿으면 금방이라도 철퍼덕하고 부서질것만 같았다.
배는 무동력선이고 노로 저어야 가는 배다. 노 젓는 뱃사람 넷에 홍어잡이배 오른쪽 난간에 ㄱ자형 받침대를 만들고 주낙을 펼치고 홍어잡이를 한다. 홍어철이 한겨울이라
매서운 추위 또한 만만치 않다. 눈보라 치고 풍랑이 점차 거세어지는 바다 한가운대 망망대해 여기가 경배아버지의 생활터전이다. 미우나 고우나 한배를 탄 사람들이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니고 그 무었이리오? 뱃사람으로서 왕초보인 스물다섯 살배기 경배아버지는 뱃사람 일곱명중에 제일 나이가 어리다...선장은 환갑을 넘긴 구레나루
가 덥수룩한 일명 뚜꺼비다...사람손이 뚜꺼비처럼 크다. 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뚜꺼비 선장외에 환갑이 다 되어 가는 김씨와 장씨 나머지는 통 말을 안하니 성씨도 잘 모른다. 그냥 성님하면 다 통한다. 홍어잡이 배에서 경배아버지가 맡아서 하는 일은
주방일이다. 한 번 도 해 보지 않은 선원들의 하루 새끼 밥당번이다. 한겨울 북풍한설 휘몰아치는데 연기에 눈을 비비면서 군용 반합에 쌀 몇톨과 보리가루를 넣어 놓고 불
을 지피면 불은 도통 붙을 줄을 모른다...오좀누고 와서 보면 불은 톡 꺼져 있고...선원들은 야 이넘아 밥은 어느 천년에 되냐고 성화다. “에이 빌어먹을..차라리 목포역 구
두집게 생활이 천번 만번 좋으네그랴...저넘들 아가리는 뭔 거지새끼가 들어 있는지 으이구우...” 경배아버지의 본명은 춘길이다. 봄에 낳았다하여 길할 길자를 더하여 춘
길이라고 할아버님이 지어 주신 이름이다.
밤바다위에서 춘길은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지나온 날들을 생각해보니 어디부터가 처음이고 어디까지가 끝인가를 모르겠다. 홍어배가 묻으로 나가
는 날이다. 누가 반겨 줄 이도 없지만 묻으로 가는 날은 잠이 잘 오질 않는다. 목포역에 떠들썩한 사람소리도 듣고 싶고 유달산 거적대기 밑 움막집에 있던 해숙이 생각도
났다. 해숙이는 경배어머니 이름이다. 압해도 섬에서 태어 났다고 해서 바다 해자를 넣어 혜숙이가 아닌 해숙으로 지어 준 이름이다. 선장 몰래 꼬불쳐 둔 말린 물고기 보
따리를 얼른 해숙에게 디밀고 싶은 춘길의 마음이다....
근 열흘만에 이리 저리 바다위를 뒹굴다가 묻으로 나오는 춘길은 두손에 거북이 한 마리씩을 들고 입에는 황소를 물고 있다. 황소가 어찌나 요동을 치고 튕겨 나가려고 하
는지라 황소 꼬랑지를 입으로 바싹 물고 용을 쓰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천길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저 버렸다...머리가 박살이 나서 다리를 박차고 움찔 하며 깨어 보았더
니....꿈이다. 아뿔싸...이것이 무슨 꿈이란 말인가? 어질 어질한 머리를 앞뒤로 만져 보지만 도대체 뭐가 뭔지 더욱 생각만 깊어진다. ..다시 잠을 청하여도 잠은 오질 않고
잡생각만 심사를 뒤흔든다.
새벽 안개가 자욱하여 앞이 잘 뵈이지 않지만 두꺼비 선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배를 삼학도 항으로 들인다. 아직 하늘에 별이 시퍼렇게 있는 것으로 보아 동이 트려
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할 듯 하다. 포구에 홍어배를 대는 작업 시간이다. 제일 나이 어리고 신참인 춘길이 먼저 저쪽 말뚝에 넘어가서 밧줄을 동여 매어 단단히 고정하여
야 한다. 춘길이 늘 하는대로 배와 포구가 다가갈 무렵 한 발을 훌쩍 뛰어 넘을려는 찰나...배가 크게 기우뚱 한다. 마침 홍어배 옆으로 지가가던 화물선이 일으키는 너울에
홍어배가 중심을 잃고 휘청한 것이다. 춘길의 한 쪽 발이 포구에서 미끄러지면서 새벽 바닷물속에 풍덩 빠저 버렸다. 춘길이 빠진 포구의 바닷물은 오만가지 오물이 뒤범
벅이 된 쓰레기장이나 다름 없는 곳이다.
모두들 발만 동동 구르고 어찌할바를 몰라 애간장만 태운다. 말없이 두꺼비 선장이 나타나더니 길다란 장대 하나를 들이 민다. 장대 끄트머리를 잡고 간신히 물에서 나오
니 춘길은 그야말로 영락없는 물에 빠진 생쥐꼴이다. 새벽 한겨울에 오돌오돌 떨며 뱃사람들이 지펴 높은 모닥불 앞에서 몸을 녹여도 이빨이 덜덜덜한다. 오늘 품삯은 그
래도 홍어가 많이 잡혀서 후하다. 품삯으로 받은 검정손주머니 보자기에 들은 지페를 만지작 만지작 거리면서 생각한다. 이 돈으로 해숙이를 만나면 어디다 쓸까? 아마도
해숙이가 무척 좋아할것만 같았다. 아니 진한 포옹으로 맞이 하지나 않을까? 아니면 좋아서 펄쩍펄쩍 뛸까?
이윽고 날이 밝아 왔다. 여명이 튼다. 한산하던 포구가 새벽일 나오고 드는 사람들로 잠시잠깐 시끌벅적하다. 고기를 나르는 사람, 사러 오는 사람, 흥정하는 사람, 물장수,
그냥 구경꾼 나부랭이 거렁뱅이. 어제 술취해 오 갈대 없는 떠돌이들 세상 가지 가지 오만 사연을 담은 애환을 담은 포구의 아침은 그렇게 밝아 왔다. 내일 저녁에 모두들
다시 여기로 모이기로 약조하고 뿔뿔이 집으로 가는 것이다. 춘길은 말린 고기 보따리를 들처매고 호주머니 깊숙이 넣어 둔 품삯으로 받은 종이쪼가리를 만지작 거리면서
유달산 아래 거적대기 움막으로 휭하니 달려 간다.
오거리를 지나 옆고개를 넘어 오르막길이다. 오르막이 오늘따라 멀기만 느껴진다. 이렇게 멀리에 움막이 있었던가 싶다. 앞만 보고 달려가니 움막에 읏대여 만들어 놓은
비닐조각이 나풀거린다. 반가움에 춘길의 눈에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어느새 주루룩 흘러 내리고 있었다. 해숙이라는 이름도 모르고 있는 춘길은 그져 아무 말 없이 야
반도주하여 압해도 소금밭에서 댕기머리하고 뛰쳐나온 해숙의 얼굴이 얼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보면 알테지. 움막 비닐문을 활짝 열어 젓혔다. 그런데 기다리던
해숙이가 없다. 어디를 갔나 궁금할 틈도 없다. 그곳에는 열두어살 아래위로 보이는 아이들 다섯이서 저거 맘대로 손발은 큰대자로 펼쳐 놓고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들이 왠넘이여? 넘의 움막에 주인 허락도 없이 이 무신 지껄이여? 춘길이 가지고 있던 마른 물고기로 패대기를 처 대니 잠자던 졸무래기들이 화들짝 놀라 일어나 걸음
아 날 살려라 줄행랑이다.
낭패다. 필시 해숙이 이 넘들 등살에 어디로 쫒겨 간 것이 십중팔구인성 싶은데 어디가서 해숙을 찾아야 된단 말인가? 앞집 판술네에게 달려 갔다. 판술네는 잔술을 파는
선술집인대 춘길이와는 서로 잘 지내고 움막도 보아 주는 처지다. "아점씨 우리 해숙이 못 봤어라우? 저넘의 아새끼들은 또 뭐지라이" 판술네가 춘길의 두손을 꼭 잡고 말
을 이어간다. "아 글씨 ..춘길이 자네 떠나고 난 다음날 저 불한당넘들이 움막이 저거 꺼라며 들이 닥치더니 처자를 멀리 내쫏았구먼" 춘길은 해숙을 찾아야 한다. 어디로
가서 찾는단 말인가?
목포역으로 달려 갔다. 목포역 주먹코에게 춘길은 그간의 사정이야기를 한다. 구두집게 하던시절 춘길의 심성이 고운지라 주먹코도 춘길에게만은 인간적으롤 대우하여 주
었던 사이다. 주먹코는 이내 알았다며 어른스럽게 춘길의 어깨룰 두드리면서 걱정 말라고 한다. 주먹코는 품속에 갈구리를 꺼내더니 나무기둥에다 대고 내리 찍으면서,
"아그들아..모다 요리로 모여 바라이" 한다. 순식간에 졸개 열두어명이 주먹코와 춘길을 둘러선다....뭐라뭐라 이야기를 하니 번개같이 허리를 굽실거리더니 삼삼오오 어디
론가 흩어진다.
춘길은 주먹코에게 말린 고기를 들이 민다. "성님 시방 지가요 가진기 이넘뿐인게라 이거라도 쪼까"...춘길은 애가 탓다. 자꾸만 불길한 생각만 든다. 어저깨 꾼 꿈이 영 마
음에 내키지 않는다. 하루를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여드레가 지나도 해숙을 찾았다는 기별은 없다. 벌써 홍어배 타는 것은 포기하고 어떡하든 해숙이 찾기에만 골몰이다.
이때 해숙은 남포댁의 주선으로 포구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밥술을 얻어 먹고 지내다가 식당주인 영감인 대봉어른이 어찌나 집적대고 잠자는 밤이면 밤마다 오만
손장난을 해대는 통에 도시 무서워서 일을 계속하지 못하고 식당을 나와버렸다.
막상 나오긴 하였지만 갈곳이 마땅하지 않았다. 또 다시 기약 없는 유랑의 생활이 이어졌다. 해숙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터로 가보기로 하였다. 시골장이 열리는 목포 뒷
골목에는 북새통을 이룬다. 고무신장수, 어물장수, 쇠붙이장수, 나무장수, 물장수, 홍합장수. 물고기장수. 해숙은 무릎을 첬다. 바로 이거다. 해숙이 섬에 있을때 부지기수
로 물밑에 붙어 있던 홍합생각이 났다. 그래 저넘의 홍합을 따다가 팔아야겠다. 해숙은 일찌감치 소쿠리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바다로 내 달렸다...홍합이 금새 소쿠리에
그득하다. 이넘을 장에다 내어다 팔아야 쓰것다고
해숙은 이제 목포시장에 홍합이내로 불린다. 먹고 사느라 그동안 정신이 없던 해숙도 잠 잘녁이면 시시때때로 유달밑산 아래 움막에 있던 춘길이 생각이 났다. 홍어는 잘
잡고 있는지? 추위에 먹는것은 먹는지? 그동안 배에서 내렸는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오늘도 여느때와 같이 홍어행상을 마치고 장사치들이 모여서 잠자는 잠터로 달려 간
다. 잠터는 여럿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싸구려 방이다. 방은 방이나 난방도 없고 장작으로 그을음만 내는 정도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잠터로 가는대 어렴풋이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다. 돌아다보니 미경이다. 별로 서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래간만에 만나니 반가웠다. 미경에게서 그간의 소금밭 사정이며 동네 이야기며 초상난
이야기며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많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미경이는 허리를 뒤로 젖힌채 만삭이 되어 있었다.....(계속)
해 풍
(사진 : 금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