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2019.2.10)


옛날


교실에서 떠드는 사람은 왜 그리도 많았던지?.....10년후 20년후....그들은 엄마 되고 아빠가 되었어. 국어. 산수. 사회. 자연. 반공. 도덕. 미술

음악. 체육....수, 우, 미, 양, 가....청군. 백군... 만국기 펄럭이던 운동회, 검정고무신, 점심때는 급식이라고 희멀건 옥수수죽 먹고..

좀 있다는 옥수수 빵이 나와 하나씩 받아 먹었지. 아! 그때 그맛은 어찌나 맛있던지.


나무 때는 난로에 둘러 앉아 양은 도시락 포개어 구워 먹었지 아마. 한 교실에 학생이 60명이었어. 한 학년이 1반,2반,3반까지 였으니까 셈해 보면

60명*3=180명...180명*6학년=1,080명이구만. 지금은 전교생 다 합해 봐야 스물도 안된다 하니. 그때는 학생이 너무 많아 수업도 오전반 오후반 나누어서

하기도 했지. 에그 나는 음악, 미술, 체육은 왜 그리도 못했던지. 그래도 졸업때는 교육감 상 타고 우등상 받았지. 부상으로 영어 콘사이스 받았구.


예전에 우리 동네는 눈도 엄청 많이 왔었어. 학교까지 4km 길을 걸어서 다녔지. 한줄로 쭈욱 서서. 지금 애들은 차로 다니더마. 가방 없었지

남학생은 책보따리에 책을 둘둘 말아서 어깨에서 허리로 대각선으로 메고, 여학생은 허리에 한 일자로 메고 다녔어. 누에 먹이고, 길삼하여 삼베 짜고

담배 농사 지으며 살았다우.


장날 장에 가면 사람도 많고 볼거리도 많았다우. 지금은 촌에 가면 사람이 참 귀해.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어. 학교 가는길은

포장이 되지 않아 간혹 차라도 지나가면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써야 했구. 그래도 냇가에서 물고기도 잡고, 가을에 미꾸라지 한 양동이 잡아다가

추어탕 끓여 먹으면 아주 별미였다우. 산골 개울 돌을 들어 올리면 가재가 기어 나오곤 하였는 데 가재는 씨가 말랐지 머.


전기 없었어. 전기가 없으니 가전제품은 당연히 없었고. 전기는 초등학교 3-4학년 때 쯤 들어 왔어. 전기 요금 아낀다고 5촉(와트) 짜리 꼬마 전구를

마루에 달아 놓고 살았어. 처음에 전기가 신기하여 전기 끌줄을 몰라 입으로 후후하고 불어 끄려고 하였어. 라디오나 텔레비젼도 없고 집집마다

정사각형에 가운데 구멍이 뻥 뚫린 스피커를 달았어. 찍찍 잡음도 많은 스피커에 연속극 듣는다고 귀를 쫑긋하며


요즘 아이들 태어나서 돌만 지나도 스마트폰 동영상 손가락으로 만지고 놀지. 집에 땔감은 또 어떻구. 너도 나도 모두 개인 지개가 있어 학교 다녀 와서나

쉬는 날이면 산에 나무하러 갔지. 둥구리(장작), 깔비, 물구리....오전에 한짐, 오후에 한짐. 소 먹이고 돼지 키우고 닭 키우고 가축도 많았어.

옛날 생각하면 지금은 모두가 천석꾼 만석꾼이지. 다 배불러 하는 소리지 머.


시와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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