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기른 배추)
두루마기
쉽게 계산해서 1500년도면 지금으로 부터 약 500여년전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진 사람은 없다. 누구나 어미가 있고 아비가 있어야 이 세상에
태어난다. 사람이 사노라면 잘 난 사람 못 난 사람 살아가는 행태도 참으로 다양하다. 잘나고 못났다는 구분도 사실 쉽지 않다. 뜬금없이 왜 이런 이야기를 끄집
어 내느냐고 의아해 할 것이다. 올 묘사에서 느낀 소회를 옮겨 보고자 한다.
500여년 전의 조상에게 묘사라는 걸 지낸다. 묘사의 행태을 보니 문중 논밭 부쳐 먹는 사람들과 동네 나이깨나 든 어른이 공생을 하고 있었다. 종손이라고 혹여
집안에 누가 될까 염려되어 다른 일정들을 물리고 먼길을 밤새워 달려가 아침에 참석한 묘사는 몸에 맞지 않는 외투를 걸친 기분이다. 조상을 섬기는 문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행하는 풍습이다. 그러나 조상을 섬기는 문화도 점차 빛 바랜 흑백사진이 되어 가고 있다.
줄이고, 참석자들의 면면을 보니 재촌하며 종중 논밭 부치는 사람과 촌에서 도회지로 나가지 않고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80대 노인들 서너분이 전부다. 나와 같은
생각이 있는 분들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조상님의 묘사를 지내려고 온 도회지 사람도 두어분 보인다. 500여년을 거슬러 내려 오면서 자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아도 꼽을 정도다.
돌아 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석하지 않는 그들의 생각이 옳았고 필자가 틀렸음을 깨달았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각자의 의식수준에 일임하고
사람이 길게 하면 안되는 것 중에 하나가 말이요 글이다. 적당하게 독자님들의 상상에 맡기는 포인트가 필요한 부분이다. 할애비 자랑말고 본인이 잘나라고
하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 정녕 그대는 조상을 섬기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는가?
설 명절에도 잘 입지 않는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재실 마당에 나서서 먼저 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재실 안 작은 골방으로 들어서서 역시나 인사를 나눈다.
이때다. 득달같이 필자의 이름을 부른다. 두루마기 벗고 나와서 거들어라는 것이다. 아참 하고 나와서 재기를 닦고 조금 거든다. 유사를 맡고 있는 한 살 위의
아제 항렬을 가진 사람이 말한다. "나도 차안에 두루마기 다 있어" (아주 상기된 표정으로 정색을 하며).
그속에 함축된 의미는 나도 두루마기 차안에 있으니 폼 잡지 말고 일이나 거들어라 뭐 이른 뜻이다. 허허 참 웃을 수 밖에. 그들은 도회지에서 온 내가 못 마땅하
고 일하는 데 거들지 않는가 하고 촉을 세운다. 조금 있으면 어련히 거들 것이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말하는 모양새가 영 아니다 싶다. 그들이 내세울 디랙토리
는 오로지 항렬이다. 그들이 내세울 건 그것 밖에 없음도 미루어 짐작은 간다. 항렬도 항렬 나름이지 11대 종가의 권위 또한 존엄하다.
제사나 묘사 벌초는 수익 창출과는 관련 없는 하나의 자손으로서의 도리요 할일이다. 잘 해야 본전이라고나 할까. 까딱 잘 못하면 욕 먹기 십상이다. 그 자리에
만약 가지 않았다면 이럴 것이다. 문중일에 코빼기고 뵈이지 않고 영 몹쓸사람이라고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방아가 그림이다.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면서 어미 아비를 욕 먹이지 않고 할아비 할미를 욕 먹이지 않음 또한 하나의 덕목이다.
농경사회와 대가족사회 씨족사회 부족국가의 틀에서 인터넷 사회 스마트사회 글로벌국가로 바뀐지 오래건만 아직도 찜찜한 감놔라 배놔라이니 유세차 감소고우
하면 양반이 된다고 생각하는건 또 하나의 작은 아집일 뿐이다. 우물안에 개구리는 우물이 온 우주라고 믿는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패망한 이유가 여러가지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당파싸움이요 양반 놀음이다. 제사나 장례 문화도 이제 많이 간소화 되거나 축소되는 추세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산소 옆에 작은 움막을 짓고 3년상을 치른다고 수염도 깍지 않고 죄인이 되어 살았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은 아날로그
행태인가? 머리에는 상투를 틀고 바지 저고리에 상상해 보라. 그 예전이 불과 100여년 전이다. 지금은 3년상은 커녕 3일장도 전광석화처럼 일사천리로 움직인다.
마누라가 죽으면 한달도 채 안되어 새장가 든다고 소식이 온다. 내년 묘사에 갈지 안갈지 아직 모르지만 가더라도 두루마기는 입지 않을 작정이다.
음력설이라고 시골 내려가는 풍습도 점차 사라지는 세태다. 시골집도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빈집이 자꾸 생겨나고 밤이면 불 꺼진 마을이 된다. 묘사도 예전에는
산에서 지냈다. 묘사떡을 받아 먹으려고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길게 줄을 서기도 하였다. 아이를 업고 가면 두 몫을 준다고 남의 아이를 빌려서 업고 줄을 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모두는 옛날의 추억이고 지금은 산이 아닌 가까운 재실에서 지낸다. 이 마저도 머지 않아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리라 생각된다.
시와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