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한 後
벌초하기 前 (벌초 2018.9.1 음7.22)
명당
올해는 유난히도 더위가 맹위를 떨쳤다. 거의 섭씨 40도를 올라가는 폭염의 8월이 가고 입추, 말복, 처서를 지나고 백중을 지나니 그 무덥던 여름도 자연의
법칙으로 돌아와 조석으로는 제법 시원하다. 백로를 며칠 앞두고 고향 선산을 찾았다. 세월이 흘러 풍습이 많이 변하였다고는 하지만 그 또한 그들이 편하자고
둘러대는 핑게에 불과하다. 충효사상은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이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 노는게 능사가 아니지 않은가? 오래전 어릴적에 아버님따라 지재미로 벌초를 따라 나선적이 있다. 다래 넝쿨을 헤집고, 작은 개울을 건너고
낫 두자루 갈아서 새끼로 곱게 쌓아 산을 올랐다. 어린 걸음걸이라 뒤 처지면 아버님은 저만큼 가 계시곤 하였다. 아버님께서는 지금처럼 예초기가 아닌 낫으로
조상님의 산소를 싸악 싸악 깍아 아주 매끈하게 벌초를 하셨다. 아버님은 왼손잡이여서 낫도 왼손잡이용 낫이였다.
벌초를 마치고 산소에 비스듬히 누워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 보면 저멀리 인가가 보이곤 하였다. 그때가 아마도 국민학교 5-6학년쯤으로 기억된다. 위에서 본
풍경이 한눈에 보아도 명당이었다. 산소 봉우리에서 보면 사방이 하나 걸림 없이 툭 트여 있어 조망이 특히 좋았으며 뒤에는 기백산이 떡 버티고 있고 앞으로
는 금원산 현성산 줄기가 힘차게 달리는 형상이다. 천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할 명당을 버리다니 애통하고 아깝도다.
옛 조상님들은 유택 하나도 명당을 찾아 모시려고 힘들여 지관을 데리고 다니셨다. 지금처럼 편안함을 먼저 추구하는 생각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아버님께서는 늘 말씀 하셨다. 대를 가시면 선조 묘도 잃어 버리고 벌초 또한 어려울거라고, 그래서 혁명을 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공들여 명당 찾아 쓴 조상님 묘를 마을에서 보이는 가까운 산으로 모셔 왔다. 혁명은 순리를 이기지 못한다. 사람은 순리대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
편리함이야 있지만 필자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이다. 왜냐하면 어른들이 그당시 시대상황에 맞게 이루어 놓은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맞아들이 되고 장손이
되고 종손이 됨은 필자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종손이라고 좋은점은 아직까지 별로 발견하지 못하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제사 지내기와 덩그렇게 있는
개밭말 산소가 전부라면 과한 이야기일까? 이뿐이 아니다. 낮은 항렬은 그리 썩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다.
선산을 모셔오고 필자에게 닥쳐온 몇가지 애환은 운명이다. 벌초 문화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하여 간다. 어떤이들은 벌초를 하지 않고 유택은 그대로 두고
작은 비석을 세겨 한데 모아 놓고 벌초를 대신하는 집안도 생겨나고 산소를 없애고 화장을 하여 납골당을 만든 집안도 있다. 언제인가 여행하면서 창문으로
본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일도 있다. 다름이 아니라 산소의 봉분을 콘크리트로 덮어 씌워 놓았다.
일본에서는 요즈음 후손들이 찾지 않는 오래된 묘는 중장비로 없애는 일을 한다는 보도를 보았다. 아직 우리나라는 여기까지는 아니지만 미래 세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아버님의 혁명 덕택에 벌초는 멀리로 가지 않고 하게 되었지만 내심 마음은 허하다. 차라리 조상님의 묘를 당초 유택에 그대로 두셨더라도 힘은
들지만 벌초를 잘 하였을터인데 아버님의 과한 걱정이셨다.
필자에게는 두 남동생과 한명의 여동생이 있다. 이들은 벌초나 제사에 대해서는 왠지 아주 무관심하다. 사촌들이나 다른 집안분들 보기에도 민망하고
부끄럽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제집부터 다스리지 못하니 어디가서 무슨 말을 하랴? 팔순을 훌쩍 넘기신 병상의 어머님께서 오히려 벌초 때가 되면
야야 어디에서 얼마 받고 얼마 받아 벌초는 누구한테 시키거라 하는 식이니 이 무슨 당치 않은 일인가?
세상에는 추구하는 가치관과 이상향이 다를 수 있다. 형제간에 다르고 부모 자식간에도 다르다. 제 아무리 돈이 많아 구중궁궐 고대광실에서 호의호식하며
살더라도 정신세계가 빈약하면 그 또한 모래위에 지은 집이나 진배 없다. 재물은 한낱 인간의 이기심의 발로이다. 돈보다는 명예가 우선이며 그 명예는
예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어떤 재산도 조상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몸 하나만 하겠는가?
세상만사 일체유심조라 세상 모든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집에서 보이고 가까운 곳이 명당중에 명당이라고 생각하고 들며 날며 조상님을 뵙는다.
시와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