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유곡


전화 걸면 "여보세요"라고 받지 않고 "와~아~"로 받는 여친이 있다. 전화 첫마디부터 욕설로 시작하니 "임마" "등신"은 보통이고 그거참 고얀지고, 나름 분석해

보니 그넘의 항렬이 높다는 잠재의식이 있어서다. 한심한 지고 자고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였다. 본인은 물론이고 애미 애비 얼굴에 먹칠하는 격이니 이 어찌

처량하않으랴? 빈 수례가 요란하고 빈 깡통이 소리나는 법이다. 깊은 물은 소리 내지 않고 흐른다.


사람이 태어나 근본을 알고 이웃을 알고 집안을 알고 그 행실이 발라야 한다. 종손은 맞아들로 내려온 집안이라 지손들보다 항렬이 당연히 아래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한 마리도 혈통이 있고 족보가 있다. 심지어 우리가 먹는 벼나 생물도 그 계통이 있다. 저 끄트머리 짜투리 혈통도 있고, 대가 끊겨 양자로 들어온

혈통도 있고, 들어내고 싶지 않은 치부를 가진 가문도 부지기수이니 단순한 항렬 놀음은 무의미하다.


조선시대에는 반상의 법도가 지엄하여 종손에게는 그 격에 맞는 대우가 있었다. 문중일에 종손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목소리 큰넘이 이기는 세상은 분명

아니건만 아직도 큰 목소리로 재미를 본 지손이 세상분간도 못하고 행하니 그 역시 쯔쯔로다. 국왕도 자식이 국왕이 되면 어미 할미는 물론이고 종친들도

예를 갖추어 엎드려 고하거나 존대하였다. 한 문중의 종손은 국가의 왕과는 다르지만 일족의 중심임에 틀림 없는 사실이다.


한번은 작년 묘사를 지낼때 일이다. 묘사를 주관하는 제사장격인 종친이 무슨 말끝에 돌아가신 아버님 함자를 들먹이는 데 가관이다. 환갑 진갑 다 넘긴

자식이 떡하니 서 있음에도 "죽은 용*이가 어쩌고 저쩌고" 한다. 어이 없는 이야기다. 아무리 항렬이 한단계 아래라고는 하지만 나이가 일곱살이나 위이고

더구나 종손 아닌가? 그러면 "작고한 용* 종손이" 하든지 아니면 택호로 "함안어른이나 함안양반"이라고 칭해야 마땅하다.


이미 돌아가신 어른에게 하는 말 버르장머리 하고는 쯔쯔로다. 그넘의 잘난 항렬타령이 아니고 무엇이랴? 옛 선인들은 같은 친구 사이라도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 사람의 호나 자로 호칭하였다. "여보게 석곡,여보게 동간" 사람이 금수와 다름은 예의와 범절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든 그러하듯이 본대가 있고 머리에

든게 있는 어른들은 그 가치와 전통을 존중한다. 때로는 일가보다 타성이 오히려 백배 천배 낮다는 말이 나오니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라는 속담이 괜한말이 아니다.


민법이 개정되기 전인 1960년도 까지만 해도 장자 상속제도였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장자에 다 물려주지 않고 종중이라는 이름으로 종중재산으로 남겨 두었다.

종중으로 두어도 장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옛날 제도가 잘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민법도 바뀌어 균등 상속은 물론

여성에게까지 균등하게 되었다. 아버지 할아버지와 같은 항렬이라고 결코  아버지 할아버지급은 아니다.


아버지 할아버지는 훨씬 옛날 사람들이고 지금의 이들은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은 환경 속에서 같은 스승 아래서 같은 수업을 받고 같은 문화 속에서 자라고

생활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아제내 할배내 함은 우스운 일이다. 더구나 같은 또래에서는 더욱 그렇다. 남편이 할배벌 항렬을 가졌다고 아내도 덩달아

경우에 없는 행태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인도처럼 신분제도를 두고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상호 예우는 미풍양속 차원에서 필요할 뿐이다.


제사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 그들을 일컬어 무어라 하여야 하는가? 조상님 산소 봉분에는 구멍이 숭숭함에도 사토도 없고 벌초를 하여야 함에도

벌초도 하지 않아 더북하니 그 사람들의 양심과 흡사하지 않은가? 조상님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재각에는 제때 청소도 하지 않고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풀이 무성한데도 무관심이니 아 세월이 이런것인가? 그들이 내세울건 항렬 밖에 더 있겠는가?


사람의 아래 위는 항렬도 있지만 제일 먼저는 나이다. 나이가 높아도 항렬이 낮거나, 나이가 낮아도 항렬이 높으면 마땅히 서로 존대하여야 한다. 그것도 당연히

아주 가까운 일족에 한해서다. 여기서 가까운 일족의 범위는 대략 거슬러 100년이라고 본다. 가까운 일족이 아니면 나이가 항렬보다 우선이다. 같은 일족이

아니면 나이 다음은 직책이다. 나이가 적어도 관직이 높으면 예우한다. 관직이 상위 직급임에도 나이가 많다고 하대해서는 안된다.


친구 이야기 나왔으니 하나 더 하면 어떤 남친은 전화를 걸면 "여보세요 친구 반가워"가 아니라 꼭 "조카님"이라고 한다. 님이라는 호칭이 존칭은 맞으나 그 넘의

항렬 타령이 나오니 내심 기분이 좋지 못하다. 할말이 태산같이 많지만 그 또한 누워서 침 뱉는 격이니 쯔쯔하고 만다. 글과 말은 다르다. 글은 고칠 수 있으나

말은 고칠 수 없다. 말의 기본은 신중함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쎄"


과거에는 농경사회이고 대가족이 모여 함께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산업사회를 넘어 첨단 과학시대이고 핵가족 또는 일인가구 시대에 다문화 전문화 사회다.

친형제간에도 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왕래가 없고 남보다 못하게 담 쌓고 살아가는 집이 훨씬 많다. 부모 자식간에도 의절하고 살아가는 집도 많다. 이쯤되면

항렬이라는 골동품도 이제 제값 받기는 어렵다. 고리타분한 종손이니 항렬이니 요즘 걸그룹이 들으면 뭐라고 할까?


요즘은 돈이 양반인 세상이다. 아무리 돈이 양반이고 좋더라도 조상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몸 하나만 하겠는가? 고고하게 내려온 깨끗한 집안은 그 자체로

자랑중에 자랑이요. 국보급 무형문화재라 하여도 아무도 이의치 못한다. 한 사람은 그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고 위로는 조상님 아래로는 후손과 연계되어 있다.

누구의 아들 손자 증손 후손이 바로 그것이요. 누구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가 바로 그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흐른다. 십년이 가고 백년이 가고 오백년이 가고 또 간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니 오죽하랴. 제행무상이로다. 강물 줄기가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풍습도 바뀌어 간다. 지금 어디 가서 양반 상놈 찾으면 그 사람을 온전히 볼 사람 많지 않다. 양반이든 상놈이든 그냥 시대의 흐름으로 여긴다.

눈은 세상을 바라 보라고 있다. 그 눈이 둥글게 만들어짐은 세상을 둥글게 살아라 함이다.


사람은 하늘 아래 땅 위에서 살아간다. 하늘은 곧 조상님도 해당된다. 앞산 뒷산에 계시는 조상님들이 보고 듣고 계심이다. 땅은 곧 자손이다. 十分思一分言

(십분사일분언)이라 십분 생각하고 일분 말하라 하였다. 지금의 사람들은 일분 생각하고 십분을 말하기를 넘어 아예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고 십분을 말한다.

추석 연휴나 설 연휴가 되어도 조상님을 찾기는 커녕 케리어 끌고 외국 나가기 바쁜 세상이다.


앞으로 십년이 지나면 크고 작은 변화가 여태까지 처럼 있을 것이다. 노인들은 산으로 땅속으로 갈 것이고, 모르는 이방인들의 집들이 마을에도 늘어 날 것이다.

과거에 100호도 넘던 마을이 지금은 고작 50호에 불과하다. 그것도 노인 혼자 사는 집이 대부분이다. 10년후면 그 50호마저 빈집이 수두룩 할 것이다. 그 빈집에

도회지에 살던 후손이 들어와 살겠는가? 그냥 선산 보존한다는 의미 밖에 다른 의미가 없다. 산은 크게 보아야 산이다.


시골의 촌집 중에는 사람이 살지 않아 공가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집이 심심찮게 보인다. 한 세대가 생을 마감하고 남은 잔상이다. 그집에 누군가 살지 않고

그대로 버려두니 온통 풀밭이 되어 있고, 석가레가 썩어 내려 않고 여기저기 쥐구멍이 나 빗물이 세어 급기야는 집이 무너져 내리는 형국이다. 고향의 집은

그냥 집이 아니라 유년 시절을 보낸 마음의 터이다. 곧 자기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버릴게 아니라 거두어 주고 보존함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제 아무리 돈이 철철 넘쳐나서 고급 외제 승용차를 굴리고 고래등 같은 강남의 아파트에서 떵떵거리고 살아 보았자 정신세계가 허약하면 한낱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남을 인정함은 곧 나를 인정함이요, 남을 배척함은 곧 나를 배척함이다. 5분 앞도 모르는게 인생이다. 사람의 일생은 유한한 존재다. 남을 탓 할때는

반드시 나를 먼저 돌아보고 남이 칭찬하거든 겸손하게 받들고 먼저 내세워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시와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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