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유산 2013.1)


12월을 보내며


또 다시 12월이다.

일년 열두달 그 끝달 12월.

그래서 더 정이 가는 달


언제나 처럼

올해도 많은 일들이

공적으로 사적으로 오고 갔다.


언제인가 그랬다.

12월은 바쁜달이라고

누구나 그렇다.


별 바쁜일이 없는 사람도

덩달아 바쁜달이다.


처녀, 총각은 시집 장가 못가서

바쁘고

취업준비생은 취직 못해서

바쁘고

아픈 사람은 병원 다니느라

바쁘다.


바쁜만큼 시간은 빨리 흐른다.

올해도 달력 한장이 남았다.


무얼 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메모첩을 보니 한일이 많다.

올해는 예년처럼 산은 많이 가지 못했다.


대신 의미 있는 일 몇가지를 하였다.

불볕 더위 한여름 윤달에


너저분한 고향집을 새집으로 만들었다.

5년후 10년후를 바라보고다.


스레트지붕 있는 아랫채 철거

재래식 화장실 철거

초록색 간이 화장실 철거

마당 한가운데 정화조 철거


높은 담장 철거

마당에 있는 시멘트 수돗물 거치대 철거

흉물스러운 대형 거울 모두 제거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욕조 제거


마당 곳곳에 박아 놓은 기와장 제거

금이 가서 못쓰는 가마솥 제거

대문에서 현관까지 깨진 시멘트 제거

벽에 박아 놓은 못 모두 제거


겨울이라 풀들도 고개를 숙이고

한가한 느낌마저 든다.


손수 심은 나무 한그루 한그루

볼때마다 한참을 바라본다.


이 나무가 몇년 있으면

얼마나 자라고 변할까?


대문 기둥에 작은 현판 하나를 달았다.

358년 종가의 징표다.


서기 1659년부터 2017년까지

358년의 가족사를 어찌 지금 기준으로

알 수 있을까?


생활,문화,가치관,생업,음식,교육,풍습

도로,통신,의복 모두가 지금과 달랐다.


전기 1960년대에 들어 왔다.

그러니 가전제품은 당연히 없었다.

자동차 없었다.

농사는 지게로 사람의 힘으로 지었다.


전화, 티브이, 인터넷 없었다.

아파트, 백화점, 지하철, 스마트폰

문자, 카톡, 기차, 비행기 없었다.

먹거리, 일거리, 놀거리 없었다.


있는 것은 보릿고개에

가난과 허기진 배뿐이다.


조선왕조 (1392~1910) 시대부터

일제식민지 (1910~1945) 시대

대한민국 근세 (1945~2017) 까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모진 풍파 모두

견디고 대를 이어온 사람들


한때는 천석군 부자 소리도 들었고

한때는 지독히도 가난하였다.


지금부터 100년전 1917년(정사년)에

큰담 종택에서 사시다가

웃말 집과 서로 교환하고

이사한 그해 여름


대홍수가 나 가옥이 유실되고

5대조부님, 고조할머님, 증조할머님

세분이나 돌아가시고

종가의 위신마저 수몰되었다.


이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못나디 못난 11대 종손이 이제서야


100년의 세월이 흐르고

겨우 종택을 다듬었다.


정유년 12월이다. 12월이 가고나면

또 다른 한해가 기다린다.


아쉬워마라 가는해 오는해를

어찌 사람 힘으로 할 수 있던가?

순리대로 살아가면 될 것을


바쁘고 힘든 육신이지만

오늘이 있다는 현실에 만족한다.


가벼이 살지 말라.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라.

하루를 살아도 의롭게 살아라.

스스로 일어서라.


드라마보다 소설보다 더 리얼한

인생극장 이야기를 두고

정유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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