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 좌광천 소나무 2017.2)


소나무가 좋다한들


소나무가 좋다한들 이 세상에 나무가 모두 소나무라면 지금처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생각과 전통 종교는 어디에서 왔는가?

뿌리깊은 유교사상, 중국문화, 공자, 맹자 수도 없이 많다. 이들중 아직도 유효한 사상이나 가르침도 많으나 세상이 바뀌면서 그 가치와 기준이 달라진

논리도 많다. 우리는 퇴계나 율곡, 이순신, 세종대왕을 비판 없이 받아 들인다. 그들의 삶이 그렇게 완벽하였을까?


우리의 마음에는 마음을 걸러내는 필터가 너무 낡았거나 너무 엉성해서 또는 너무 촘촘해서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고 무의식중에 반복되는 학습효과에

그렇다고 옳다고 틀리다고 믿어버리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선입견이요, 고정관념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고리타분한 고조선

시대 개념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어떨까? 어디서 구해 왔는지 집안 귀퉁이 구석에는 부적이 붙어 있다.


좋은게 좋다고 두고 보기도 하지만 가끔 생각이 많아진다. 보기 싫어서 몇 번 떼내어 보았지만 붙이는 장소가 베개속이나 침대 아래로 약간 진화만 할뿐

개선이 되지 않는다. 천장에는 부적, 벽에도 부적, 자동차에도 부적, 집안 구석 모퉁이에는 팥봉지라 송신하기 짝이 없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그 존엄한

사람이 일개 무녀의 부적 한 장에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맡기고 살아가도 되는지?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나약함은 외로움이다. 신은 인간을 만들었지만 그 신은 인간이 만들었다. 태양신, 조상신, 샤마니즘, 종교 모두 인간의 나약함이

의지할 곳을 찾으면서 출현하였다. 시냇물이 졸졸졸 흐른다. 어느새 발아래 봄이 찾아 왔다. 바람이 차다고 하나 잠시다. 부는 바람에 시냇물이 물결을

일렁이며 다가온다. 저 시냇물에 일렁이는 물결은 고운 물결이다. 고운 물결을 거대한 파도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인가? 주제는 없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내 방식대로 생각을 옮긴다. 인간은 자유를 보장 받고 싶어 한다. 자유를 보장 받기 위하여

내 일부 권리를 포기하거나 절충하기도 한다. 실질적인 자유를 얻기 위함이다. 해방되고 싶어 한다. 속박으로 부터 자유롭게 행하고 싶어 한다.

산행을 하는 사람에게 중간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이리 가시요, 저리 가시요, 멈추시요 하면 그날 산행이 잘 될리 만무하다.


해풍


' 아침동산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성마을 산울림팬션  (0) 2014.06.19
산행예찬  (0) 2014.04.03
인연  (0) 2014.02.09
운칠기삼  (0) 2014.01.30
농촌과 도시  (0) 2014.01.2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