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해운대 동백섬 2016.12)
가끔은
가끔은 나도 모르게 놀랄 때가 있다. 내가 예측한 무엇이 딱 들어 맞는다. 귀신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인다. 남보다 특출나게 뛰어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느낌상 마음속으로 판단한 논리들이 딱딱 들어 맞는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저 사람 티브이에 나오면 채널 돌린다. 속이 뻔한 이야기만 하는 위인이라
들으면 들을수록 짜증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하늘나라 높고 높은 곳에서 백발이 성성한 도인들이 둘러 앉아 각기 자기의 수염자랑이라도 하듯이 수염을 점잖게 쓰다듬는다. 지긋이 감은 눈에는 고요함이
묻어난다. 하얀 도포자락이 은쟁반보다 더 새하얗다. 나무 뒤에서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한 신동이 숨을 죽이며 구경을 한다. 저것이 무엇을 하는 걸까?
가만히 보니 도인들이 둘러 앉아 동그란 유리구슬 하나씩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유리구슬에 입김을 불어 넣기도 하고, 들었다가 놓기도 하고, 정성스레 쓰다듬기도 하고, 이손에서 저손으로 돌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구슬의 색깔이 바뀐다.
노랑, 초록, 보라, 비취 색깔도 가지가지다. 도인들이 구슬을 한번 돌리면 십년의 세월이 흐른다. 천천히 천천히 돌린다. 신기하고 기묘하다. 어찌 이런일이
눈을 떳다 감으면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다. 캬아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신동이다.
음 그래서 그랬구나 알듯 모를듯 꿈같은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어찌 저리되지 궁금해 할 새도 없이 도인들은 수염을 쓰다듬으니 오늘 일이 마무리인
모양이다. 구슬을 제자리에 놓으니 구슬은 또 서서히 서서히 자전을 한다. 양 사방 팔방에는 하늘을 지키는 수문장들이 눈을 부라리고 서 있는데 키가
스무척은 넘고 손가락 하나가 어른 허리통보다 크다. 콧바람만 일으켜도 사방 백리안에는 개미 한마리 얼씬 못한다.
도인들이 구슬을 내려 놓고 유영을 떠난다. 공부를 하는건지 놀이를 하는건지 기이한 행동이다. 앞으로 세번 뒤로 세번 공중재비를 넘고 작대기로 물을
탁 치니 불이 되고 다시 공중재비를 하니 눈이 휘날리고 얼음천지가 된다. "천년유혼 월하만리 묵계입완" 오늘의 명제다. 내달 그믐날까지 답을 알아내어
뒤뜰 홍매화 가지에 걸어 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살아서 나가지 못하느니라!
해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