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 wind 2013. 11. 24. 11:22

 

 

 

아버님 가시던날............ 그날은 양력으로 시월 초하루다

9월 추석시즌을 지나고 10월이다. 가을의 정점에 들어서는 10월의 첫날 전날 밤 꿈이 어지러웠다

오늘따라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휴대폰을 책상 서랍속에 넣어 두었다. 오후 2시쯤 근무지에 내방하는

손님이 있어 볼일 보느라 오후 2시가 훨씬 넘은 시각에서야 무심코 폰을 꺼내 보았다.

 

서울에 있는 작은고모의 부재중 전화가 여러번 찍혀 있다. 얼른 전화를 걸었더니 아버님께서 쓰러지셔서

대구병원으로 가는중이라고 한다. 좋지 않은 예감이 엄습한다. 오후 3시쯤에 머리가 갑자기 띵하더니

정신이 잠간 나간듯한 경험을 하였다. 전날 밤 꿈도 그렇고, 돌아가시기 사흘전에는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꾸지 않았던 아버님 꿈을 꾸었다.......... 꿈에 아버님 모습은 젊고 잘 생긴 모습이었다.

 

아버님께서 어디를 가시길래 "아버님 어디 가세요" 하다가 깨었다. 그럴려고 그랬는지 오래전에 만들어

놓은 지인들의 주소록을 다시 정리하여 며칠전에 놓아 두었다. 이상하게 그날 지인 주소록을 가지고

사무실에 출근한 날이다. 혹시 만일을 생각하여 주소록을 가지고 대구로 향하였다

대구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아버님폰으로 전화를 드렸다.

 

간호사가 전화를 받는다. 빨리 오시라고 어디쯤 오고 있냐고 한다. 의식이 있느냐고 물으니

의식이 있다고 한다. 대구 카톨릭병원 오후 5시경 도착이다. 서울에 동생들은 오고 있는중이라고 한다.

물어 물어 심장응급실이다. 복도에서 서성인다. 이내 허리가 많이 꼬부라지시고 머리가 허연 어머님이

보인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마스크를 한 젊은 의사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보호자를 찾는다

 

보호자냐고 하여 "그렇습니다" 하였더니 심폐소생술을 30여분 동안 하고 있는데 어려울거 같다고 한다

기다렸더니 다시 20여분이 지난뒤 의사는 안으로 들어 오라고 한다. 뒤이어 온 남동생 둘과 들어 갔더니

모니터를 보여 주면서 심장이 막힌곳을 철심을 넣어 뚫었는데 심장이 정지되어 살아나지 않으니

심폐소생술을 중단하여야 겠다고............ 어이가 없고 황망한 마음만 가득이다

 

거창에서 대구로 오는 엠블런스안에서도 의식이 또렸이 있어 함께 동승한 어머님에게 지갑도 빼어 주시고

쓰고 계시던 안경도 벗어 주시었다는데 병원 도착 불과 1시간여만에 돌아 가셨다고 하니 이 또한 무슨

운명이란 말인가? 평소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귓전에서 맴도는데 아무 말씀도 남기지 못하시고 그렇게

가시다니............... 이 불효를 어찌 하오리까?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니, 오전에는 집마당에 심어 놓은 배추도 돌보시고, 오후 점심나절에 동네사람

들과 점심을 드시러 식당을 찾았는데, 식사도중 땀을 비오듯이 흘리셔서 수건으로 닦고 화장실을 다녀오다

가, 사람이 주저 앉아서 보니 말이 어눌하여, 이러다 안되겠다 싶어 119에 전화를 걸어 거창 읍내 적십자

병원에 갔더니, 심근경색이니 빨리 대구 큰병원으로 후송하라는 말에 대구 병원으로 달려 왔다고 한다

 

아버님 연세 81세 1933년생이시니 올해가 2013년 만으로 80세이다. 아직 충분히 더 사실수 있는 연세임에도

홀연히 가시니 애통하고 애통하도다. 그간 전화도 자주 드리지 못하고 더군다나 올 추석에는 고향에

가서 뵙지도 못한 마음이 못내 아쉽고 죄송스럽다. 아버님을 마지막으로 뵈온 것이 지난 여름 면사무소

볼 일 있어 갔을때이다. 추석때는 교육도 있고, 집에서 모시는 제사도 있어서 올 수 없다고 말씀드리고 딸랑

돈 10만원을 용돈으로 드린일이......... 자꾸만 마음에 짐이 되어 돌아온다.

 

아버님은 거창신씨 10대 종손으로 남덕유산 자락 황산마을에서 태어나시어 28세에 할아버님을 여의시고

할머님과 함께 가난한 살림을 맡아 갖은 고생을 다 하시었다. 성품이 대쪽같이 곧은 분이시라 남에게

단 한푼도 신세 지기를 싫어 하고, 가난한 살림이지만 정직하게 선비정신을 가지고 한글 한문 두루

필체가 능하시어 동네이장일도 여러해 맡아 보시었고 집안 대소사를 잘 이끌어 주신 분이었다

 

10월1일(화) 저녁6시경 아버님은 운명하셨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계시는 아버님을 영안실로 옮기는데 하염없는 눈물만 앞을 가린다

사람이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라 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야속하게 가는 방법도 있구나 싶다

함께 온 동생들과 어머님과 아버님을 모신 병원차와 거창장례식장에 밤9시경 도착하였다

 

워낙 아무 준비없이 당한 일이라 정신을 차리고 친척, 직장, 친구, 지인들에게 알렸다. 빈소를 차리고

3일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그날 당일 우리 모두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있을 뿐이다

꼬박 밤을 새우고 이튿날 10월2일(수) 조문객을 맞이하고 유택도 알아보고 할일이 많아 바쁘게 움직인다

사업을 하는 동생들의 조화 60여개가 장례식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 앞 현관까지 나온다

 

10월3일(목) 아버님 장례일이다.

이날은 개천절로 징검다리 휴일시즌이다. 다음날 금요일 일하면 토요일 일요일이라 쉬는곳이 많은 날이다

아버님을 모신 리무진운구차를 따르는 상주들차량 행렬이 거창읍내를 벗어나 고향 황산마을로 들어서서

아버님 영정을 따라 집안 이곳 저곳을 한바퀴 도는데, 전통 장례복 차림의 상주들의 눈에서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동네앞 공터에서 꽃상여에 아버님을 모시고 노재를 지낸다. 온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슬픔을 함께하여

주었다. 상여꾼들에 의하여 아버님은 우리 조상님들이 계시는 황산마을 개밭말(개전골) 선산에 모셨다

이날은.... 날씨가 백옥같이 맑은날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또한 우리 집사람 생일이기도 한 날이었다

모든일들이 갑자기 일어난일에 대한 멍한 마음과 그리움과 허전함이 뒤범벅이 되어 몹시도 슬픈 하루다

 

11월18일(월) 아버님 49제일이다

영혼이 육신을 벗어나 하늘로 올라간다는 날 49제일이다. 신기한 일이다 이날은 또 내 생일이니 말이다

아버님 49제는 고향에서 더 산골로 들어가 북상 송계리 송계사 절에서 치렀다

부처님전에 아버님 영가를 모시고.... 49제를 올리는 날이다.

 

당일 송계사에 도착하니 아침 7시30분이다. 덕유산 찬바람이 골을 타고 쌩쌩 불어온다

뒤이어 도착한 가족들과 승방에 들러 차 한 잔 마시고 9시경 의식이 시작된다. 스님의 목탁소리가

처량하고 처량하다. 겨울로 들어서는 찬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불어오는 깊은 산사의 찬 마루바닥에

앉아 아버님 영정을 대하니 나도 모르게 두눈에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아버님께 잔을 올리고

독경을 하고 11시 넘어 49제를 마치고 영가를 모신 종이배를 불에 태우러 부처님을 나서 밖으로

나오니................... 올 첫눈이 그것도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스님말씀이............ "영가님이 복이 많은 어른이십니다" 한다.

아버님 영정을 모시고 하늘로 올라가는 종이배에 옷가지와 신발 이것저것 불에 태우니

불이 너무나도 활활 타오른다, 그침없이 타오른다. 평소에 강직한 기질로 살아 오셨던

아버님의 성품과도 같이.... 거침없이 타오른다.

 

아버님은 가시는날 침묵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계셨다

말없이 꽉 다문 입에서는 그 어떤 말씀보다도 더 진한 침묵으로 자식을 훈계하고 계셨음이다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 사람은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사람은 덕으로 살아야 한다

열마디 말보다 한가지 실천이 중요하다............. 세상을 엄하게 살아라!

 

 

아버님 극락왕생하시옵고 인도환생하소서 !

 

 

불효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