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 wind 2018. 6. 7. 09:34

 

 

 

 

 

 

 

 

 

 

 

 

 

 

 

 

 

 

 

(유월 2018.6.7)



작가의 집


작가의 집은 단촐하다. 그리 으리으리한 장신구도 없고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나그네도 없다. 창문 밖 참새때들의 지저귐이 유난히 크게 들린다. 여기서 20여분

가면 읍내다. 읍내는 풍경부터 다르다. 밤이 되면 더욱 다르다. 연어가 부화하여 개천을 따라 멀리 유영을 마치고 돌아 오듯이 사람도 때가 무르 익으면 제

살던 곳으로 찾아 온다. 혹 찾아 오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그리며 지낸다.


요즈음 하루 일과중 하나가 텃밭에 물 주는 일이다. 꽃이며 채소며 나무며 물 주는 기쁨이 좋다. 사람은 말이 많다. 그중 안해도 되는 말도 있고, 해서는 안되는

말도 있다. 말 많은 사람들 보다 말 없는 꽃, 채소, 나무가 더 정이 간다. 제자랑 하기 바쁘고 남 험담하기 바쁜 사람들 또한 많다. 산도 혼자 다니는 사람이 늘어

나고, 밥도 혼자 먹는 사람이 늘어 난다.


이뿐이 아니다.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동물과 지내는 사람들도 많다. 예전에 애완견이라고 하더니 지금은 반려견이라고 한다. 사람이 사람을 피하고 멀리하는

세태다.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 낸 하나의 자화상이고 풍속도다. 가정에서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체득한 결과다.

제 아무리 걸판지게 하루해가 짧도록 산해진미를 먹어도 그 또한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고 허하게 마련이다. 


인간은 심리적인 예술가다. 우리 일상의 모두가 심리적인 예술의 범주에 속한다. 작가는 글을 짖는 사람이다. 옷을 짖는 사람이 한땀 한땀 실과 바늘로

옷을 짖듯이 한자 한자 글을 짓는다. 목수가 집을 짖듯이,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이 글을 짖는다. 창문 밖 푸르름이 벌써 오월도 보내고 유월을 맞이한다.

이야기가 한참 옆으로 흘렀다. 다시 본래 하고 싶던 이야기 주제로 돌아간다.


작가의 집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 산골이다. 지금은 도로도 좋아지고 통신사정도 좋아져 나름 편리하다고 하지만 아직도 까마득한 시골이다. 그 시골

한가운데 작가의 집은 있다. 서기 1659년부터 내려오는 종가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우와 그러면 집도 한옥으로 고색창연한 전통이 빛나는 집이겠다고. 그러나

아니다. 작가의 집은 큰담 기와집에서 살았다. 1917년에 윗마을 어느 댁과 집을 바꾸고 그해 여름


무지막지한 수해가 나서 집이 떠내려 갔다. 세분이나 줄초상이 났다. 세간살이도, 서책도, 사람도 떠내려가고, 종가의 체신마져 떠내려 보내야만 하였다.

증조부님께서는 집채같은 황토물이 집을 덮치자 옥양목 끈으로 증조부님의 몸에 고정시키고, 고조부님을 허리에 동여 매고 감나무 위로 올라 가서 목숨을

건졌다. 증조할머님(3대), 고조할머님(4대), 5대조 할아버님 세분은 홍수에 쓸려 내려 가시어 돌아 가셨으니 슬프고 슬프다.


이때 할아버님은 외가댁에 가셔서 화를 면하였다. 지금의 종택은 이름처럼 거창한 고택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 나무를 심고 마음을 다듬고 다음 100년을

심는다. 역사는 바람이고 흐름이고 물결이다. 변한다는 말이다.


예전에 이집에는 반겨주는 사람이 많았다. 할머님이 반겨 주었고, 아버님 어머님이 반겨 주었다. 짬짬이 시간 내어 200km거리를 달려 닫힌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선은 썰렁하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 대문 열고 들어가서다. 반겨 주는 사람은 없지만 심어 놓은 나무와 꽃, 옥수수와 가지, 고추, 호박, 오이가 반겨 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집성촌이지만 이들은 말 없이 언제나 주인을 반겨 준다.


청산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