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 wind 2017. 8. 29. 12:21

 (2017.8 소나무)


여름(2017)


날씨가 엄청나게 더운 윤5월 양력으로 7월 가만히 숨쉬기도 어려운 삼복더위의 한가운데서 발길은 시골로 향하고 있었다. 무언가 하여야만 한다는 의무감과

누군가에 이끌리듯 향한 걸음걸이로. 일사천리로 일은 순조로웠다. 아랫채 스레트 지붕 철거부터 헛간으로 무용지물인 재래식 화장실 지붕의 스레트도

뜯겨져 나갔다. 앞방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결혼 예물로 한 검정색 자개농도 폐기물에 끼여 있다. 버려라. 버림은 곧 새로움의 시작이다.


지난번 세든 사람이 버리고 간 쓰레기와 뒤섞여 앞마당이 쓰레기로 가득하다. 일은 내부부터 시작이라 외부일은 잠시 중단하고 거실 천정 공사, 문틀과 문짝

페인트 도색 작업이 시작되고, 페인트 작업이 마쳐질 무렵 도배하는 일꾼들이 뽕짝 음악에 맞추어서 도배를 한다. 도배지 선택은 미리 하여야 할 수고이다. 

욕실 타일 작업도 있다. 욕조를 철거하고 타일 붙이기전에 설비가 기본이다. 쿵쿵쾅쾅 둔탁한 함마 쇠소리가 더위도 잊게 한다.


스레트 지붕이 있는 아랫채에 스레트를 벗겨내니 꽁지 빠진 닭처럼 뼈대만 앙상하다. 연이어 굴삭기가 이리저리 춤을 춘다. 그렇게 수십년을 초가지붕으로

있다가, 스레트 지붕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아랫채다. 옛날 이곳에서 과자점을 하기도 하였던 추억어린 곳이다. 이제 그 수명을 다하고 철거가 된다. 아랫채는

돌아가신 아버님이 직접 산에 가서 나무하여 손수 지은 집이다.


한때는 리모델링도 생각하였지만 원채 옛날 구조라 철거가 답이었다. 굴삭기에 힘이 가해질때마다 벽채도 기둥도 쑤욱 쑤욱 뽑힌다. 아랫채를 철거하고 나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기백산과 현성산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갑갑하고 숨이 막히게 닫혀 있던 공간이 드디어 햇볕을 보는 순간이다. 재래식 화장실 또한 철거다.

집안의 애물단지 재래식 화장실 그 쓰임을 다한지 이미 오래다.


공사차량이 쉴새 없이 마당앞 작은 마을 도로를 오간다. 공사가 한가지씩 이루어질 때마다 작은 보람도 있다. 어느새 반바지 입은 종아리와 양팔 얼굴은 검게

타고 제때 자르지 못한 머리는 텁수룩하다. 작업장이 집성촌인 시골인 관계로 오가는 사람마다 인사로 한마디씩 거든다. 이런소리 저런소리 "담장이 낮지

않느냐?"... "종손이 들어오니 좋다"... "돈은 얼마나 드냐?"... "이제 여기와서 사냐?"... "어머니는 어떠냐?"... "하필 더울때 하느냐?"


"스레트지붕 없어지니 시원해서 좋다"... "집 다 하걸랑 초대해라" ....씽크대도 바뀌고 천정과 벽이 새단장을 한다. 지은지 24년, 묵은집으로 3년, 주인 없는

집이라 몰골이 그야말로 말이 아니다. 에이고 애비 없는 자식같이 버려진 집이라. 거둘 사람은 오직 나 하나. 문틀도 하이샤시로 바꾸고 강화마루도 깔고 싶었지

만 일이 너무 크게 벌리는 것 같아 순차적으로 하기로 하고 마루는 깔끔한 모노륨으로 시공이다.


전기공사조가 들어와 전등은 모두 LED로 교체다. 집안에 배치된 문의 방향도 방안쪽으로 향하게 바꾸어 단다. 커다란 대형거울도 보기 싫게 어지러이 널부러져

있다. 현관, 거실, 욕실 대형거울 모두 철거다. 못이란 못은 왜 이리도 많이 박아 놓았는지 모조리 뽑는다. 북쪽으로 향하는 쇼파방향은 남으로 향한다. 보기 싫게

박아 놓은 액자도 뜯어내고 못쓰는 냉장고도 버리고, 흉물스러운 파랑색 간이화장실도 없어진다. 우물가 시멘트도 철거하고 몸체 없는 나무 뿌리도 뽑힌다.


간이화장실이 굴삭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트럭에 실리는 모습 보며 얼마나 속이 다 시원한지 알 수 없었다. 정화조 또한 골칫거리다. 앞마당에 배짱 좋게

묻혀 있던 정화조도 뽑힌다. 위생차량이 들어오고 길다란 호수가 제 역할을 한다. 집 배수를 위하여 물받침도 손보고, 경사를 맞추어 배수관도 묻는다.

대문앞에 깊게 박아 놓은 두개의 길다란 쇠말뚝은 뽑아 놓고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버리려다 기념으로 챙겨 두었다.


아랫채 철거한 자리와 재래식 화장실 뜯어낸 자리에 담장을 쳐야만 한다. 기와를 알아보기 위하여 기와 공장을 들르고, 기와 이는 와공에게 연락하여 다음날

와공 둘이 현장에 사전답사차 오고 일은 다음날부터 바로 시작이다. 와공왈 "담장이 너무 높아요" ...."담이 낮아야 복이 들어옵니다." 담장을 낮게 쌓아 올리고

5일간의 작업끝에 담장은 완성되었다. 이 무렵 보기 싫던 대문도 새 대문으로 단장을 마친다.


이웃 아주머니들이 "하이구 대문 이쁘요오" 대문 천정이 오래되어 누렇다. 하얀색으로 페인트칠을 하고 대문 타일도 현대식으로 갈아 붙인다. 마당에 마사를

깔고 그 위에 잔디를 심으니 내 마음도 파랗다. 마당 한가운데 우물 매운 자리도 숨구멍으로 길다란 쇠파이프를 넣어준다. 앞뜰 빈공간에 화단을 만든다.

돌로 쌓아 만든 담장 아래에는 소나무, 장미, 능소화, 만리향, 아로니아, 거봉을 심는다. 뒤안도 깨끗하게 정리하여 텃밭을 만든다.


무 배추도 심고, 파도 심고, 뜰에는 부산에서 가져온 석류와 무화과를 심는다. 한여름 공사가 끝나고 양력으로 8월 초하루 1차 이삿짐이 들어 온다.

종손의 귀향이라 진심으로 반겨주는 사람도 있고, 언제나 그렇듯이 시기반 질투반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더러는 있다. 집 수리를 위하여 협조를 아끼지 않은

집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조상님이 이끌어 주신 듯 하늘은 맑았고 잔디를 심고 나니 그제서야 촉촉히 비가 내린다.


말하기는 쉽다. 누구도 올해가 정사년 수파가 나서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된지 꼭 100년이 되는 해라는 사실을 모른다. 직접 이야기해 주어도 흘려 듣고 진정성

있게 들어주는 집안사람 그 누구도 없다. 자식도, 형제도, 삼촌도, 사촌도, 오촌도 모두모두 무관심하다. 아는이라고는 산에 누워 계시는 조상님뿐이다.

새로운 100년의 시작이다. 아무리 천둥 벼락 비바람이 몰아쳐도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360년 종가 중흥의 기운이 동녘창으로 들어온다!


해풍